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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tesy of the artist and Space9.

기획: 김보현

세계관에 대한 전복, 인식의 재편이라는 거대한 화두의 근저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까? 인식의 재편에 예술이 어떠한 역할을 해낼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오히려 우리의 규범과 전통적 신념을 전복시킬 수 있는 의외의 매체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남성모양』 전시는 예술계에서 오래전부터 언급해왔던 퀴어, 페미니즘 등의 이슈를 동양화라는 매체를 통해 발언해보고자 하는 전시이다. ● 한국의 현대 예술에서 좀처럼 전면에 내세워진 적 없었던 동양화(또는 한국화) 판에서 그럼에도 오랜 시간동안 해방적인 수행을 하고 있는 작가들의 화폭을 들여다본다. 여성이 아닌 남성의 신체다. 이들은 객체가 된 남성의 신체를 문인화 또는 불화의 필치로 표현한다.

김화현의 작품에서는 여성들이 즐기는 하위문화 안에서 대상화되는 남성의 신체를 문인화 기법으로 만날 수 있다. 가장 권위적인 전통 중 하나인 '문인화'는 지식인의 고매한 정신과 기술을 통해 완성할 수 있는 장르이자 작품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을 갈고 닦아 그림 속에 담는다는 동양화 특유의 이상향에서 여성은 철저히 배제되어있다. 이 뿐인가. 손쉽게도 배제해버린 여성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아닌, 전혀 다른 취향과 목소리를 만날 때면 "(이성애자) 여자답지 못하다"고 낙인찍었던 수많은 역사는 지금 여기, 남성의 신체로 발화된다. ● 김화현의 작품은 가부장적 질서가 용인하지 않는 여성적 시각과 남성의 신체를 다룬다는 측면에서 넓은 의미의 퀴어 실천에 포함시킬 수 있으며, 동시에 제도권에서 으레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어온 여성들의 하위문화를 적극적인 형식으로 차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방적인 수행의 작품이라 이해할 수 있다.

박그림의 작품 속에는 남성을 유혹하는 남성의 초상이 전면에 드러난다. 퀴어 정체성을 밝혀내는 이야기를 불화의 성찰과 맞닿아 풀어내는 방식은 LGBT뿐만 아니라, 우리 개개인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여정으로서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다른 색깔의 위로가 되어 줄 수 있다. ● 전통불화의 퀴어적인 특징을 끄집어 내어 현대적으로 변주하는 성소수자 동양화 작가를 처음 마주하고 있다는 점은 단순히 '최초'를 넘어서 왜 더 많은 목소리를 동양화라는 장르 속에서 찾아볼 수 없었는지 되묻게 한다. 이 질문에 설사 자조 섞인 대답만이 맴돌지라도, 우리는 뭉근하게 욕망하는 남성들의 초상을 마주해야만 한다. SNS 속 게이 남성들의 나르시즘을 포착하여, 불화의 기법과 언어를 적극 활용하는 박그림의 작품은 게이 커뮤니티에 대한 메타 재현을 수행함과 동시에 개인성으로의 합의를 향한 그만의 성찰과 수양의 한 방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개인성의 발현이 우리의 혐오 또는 욕망과 어떻게 닮아있는지를 생각해 볼 때 공동체적 가치를 이루는 실마리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을 퀴어링 한다는 것." 이 한 문장에 담긴 두 용어를 향한 수많은 혐오와 불편함을 본다. 처참한 성착취 범죄 뉴스들이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트랜스젠더에 대한 논쟁과 고성방가가 오가는 SNS 사이에서 본 『남성모양』전시는 동양화라는 매체가 낯설게 전하는 얼굴과 몸뚱이들 그 자체로 거한다. 여성과 남성의 신체를 향한 권력과 관습의 폭력성에서부터 기인한 동시대의 여러 문제들과 더불어, 우리 안에 경계지어진 혐오와 불편함에 대하여 두 작가의 작품 속 '모양'이 시선을 들어 마주할 뿐이다. ● 오래된 규범이나 편견에 개의치않고, 소수자의 목소리를 내어 각자의 즐거움을 연대하는 우리는, 결국 서로를 번갈아 바라보고 오고 가며 다시 비추어보면서 "거대한 화두 근저"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보는 것이다. ● 전복과 해방은 어느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는 새 가까이 오는 것이라 상상하면서, 2020년 혼란한 지금에 전시장에서 마주할 신체를 보고 우리가 지을 표정이 어떤 '모양'이 될 지 감히 상상해본다. ■ 김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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