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rtesy of the artist and Doosan Gallery.
기획: 김수정
“너희도 커봐라, 그런다고 나라 안 바뀐다… 어른들 그런 말 안 했으면”1)
한국의 청소년 의회에서 활동하는 중고등학생들과의 인터뷰를 실은 기사의 머리글이다. 나는 얼마 전에 이 기사를 읽고 2년 전에 엄마와 나눈 대화를 생각했다. 우리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우연히 촛불집회(박근혜 퇴진 범국민 행동, 2016~2017)2)가 화제에 올랐다. 엄마는 너도 ‘그런 데’ 나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질문의 뉘앙스에 짐짓 놀랐고, 이어 “그럼 엄마, 나도 나가지, 근데 매주 나가지는 않아.”라고 답했다. 엄마는 애틋하지만 동시에 딱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다고 세상이 변할 것 같으냐, 너는?”
나는 1980년부터 1994년 사이에 출생한 이들을 부르는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s) 초반에 속한다. 우리는 디지털 네이티브이거나 매우 익숙한 사용자(user)이다. 고등교육의 수혜자이지만 부모로부터의 독립 시기가 늦고 스트레스에 약한 눈송이 세대(Snowflake Generation)라는 별칭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물리적으로 윗세대의 경제적 성공을 이룰 수 없는 성장 침체기, 투기의 덫에 빠져있다. 부모들의 피해 의식과 교육열로 입시전쟁을 치른 세대이고 일부 권력자들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취사 편집된 근현대사를 배웠다. 나의 막내 이모, 삼촌뻘인 386세대3)는 민주화 세대라고도 불린다. 유신과 신군부 시대에 청년기를 보낸 베이비부머(Baby boomers)가 부모 세대이고 주어진 운명대로 살았던 사일런트 세대(The Silent Generation)가 조부모 세대이다. 이전 세대가 전해준 가치들 중에 반드시 잊고 다시 배워야 하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단일민족국가이기에 고질적인 계급 갈등이나 인종차별은 뚜렷하지 않지만 세대갈등이 심하고 젠더, 다문화에 대한 몰이해가 만연하다.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는 그것을 밝히고 변화를 이끄는 주체가 되는 과정에 서있다.
본 전시 《Flags》는 밀레니얼 세대인 내가 나의 가족, 주변, 타인-조금 더 명확하게는-분리되는 세대층을 이해하기 위해 관찰하고 대화를 시도하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쌓아 올린 전시다. 전시는 2016년 촛불집회와 그를 축으로 반응했던 수많은 개인과 공동체가 들었던 ‘깃발(Flags)’의 이미지로부터 출발한다. 2016년과 2017년에 집회에 참여한 저항 주체들의 깃발은 학교와 단과대의 깃발들, 노동조합, 진보 정당의 것들로 크게 구분되던 이전 집회들의 전형성을 넘어섰다. 환경운동을 하는 녹색당, LGBTQ+커뮤니티를 대표하는 무지개 깃발과 더불어 셀 수 없이 다양한 시민 연대 깃발이 등장했다. 민주묘총, 장수풍뎅이 연구회, 국경 없는 어항회, 전견련 등 아무 깃발 대잔치로 불린 군중 속 놀이도 있었다. 이들은 ‘부유하는 기표(장수풍뎅이 연구회 트윗)’이자 동시에 각자가 애착하는 존재에 대한 발언과 함께 집회에 개입하고 기여했다. 모두의 머리 위에서 높이 펄럭이던 깃발들은 그들의 소속과 신념, 지향을 선전하며 그것을 들고 있던 시민들의 사회적인 좌표를 나타냈다.
한편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가 가결된 후 이에 반발한 탄핵반대 집회가 거세졌을 때 그 집회의 참여자들이 든 깃발은 태극기와 성조기였다. 촛불집회와 대결구도를 펼친 ‘태극기집회’ 참여자들은 대다수가 60년대 이상 고령층으로, 우리 사회에 좌우가 나뉘는 세대 간의 갈등을 점화했다. 사회, 정치, 문화의 진보가 과거의 것을 지우고 반성할 것들에 대해 논의하는 동안 자신이 살아온 역사가 부정된다는 위협을 받은 그 노인층은 박근혜에게 그들의 삶을 투영했다. 1980년대에 애국 시민이 민주화를 위해 독재 타도를 외치며 흔들었던 태극기는 이제 그 독재 정권에 향수를 가진 애국 당원들의 것이 되었다. 딸과 아들이 촛불집회에 나갈 때 어머니와 아버지는 태극기 집회에 나가 대치하는 현상이 벌어졌고 나는 내 부모님 핸드폰에도 가짜 뉴스 메시지가 가득하지는 않을까 불안해했다.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는 서로가 살아보지 못한 시간만큼 불화했다.
탄핵이 인용된 후에도 깃발은 광장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미투 운동으로 더욱 바이럴 해진 페미니스트 집회, 소녀상 집회, 제주 예멘인 난민 수용에 대한 찬반 집회, 프라이드 퍼레이드, 프라이드 퍼레이드를 저지하는 기독교 집회, 최저임금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소상공인 집회 등 ‘정책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인본주의의 관점에서 재고해야 할 구시대의 사고방식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그 변화를 위해 많은 이들이 싸우고 있다. 그러나 세대를 막론하고 표출되는 일부 집회의 광기는 억눌린 트라우마와 분노, 그리고 종교적 맹신을 반증하기도 한다. 일부 페미니스트 집회는 남성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성소수자들이 죄를 짓는다고 생각하는 기독교 집회는 프라이드 퍼레이드 앞에서 반대 혈서를 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을 촉구하는 태극기 집회는 성조기와 태극기를 결합한 깃발을 자체 제작해 휘날리고 입맛대로 만든 ‘종북’세력을 ‘박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집회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의 깃발들은 광장을 뜨겁고 폭발적인 변화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 본 전시는 집회의 현장, 혹은 본인이 위치한 지대에서 각자가 가슴에 지니고 있는 어떤 깃발(지향)들을 보여주는 작가들과 함께한다. 이들은 한국의 민주화가 쟁취되는 과정에서 개인과 집단이 들었던 연대의 깃발들 (마치 백악관 앞의 수많은 pussy hat같은), 특정 공동체의 사고와 그 기저, 거대 권력과 젠더 이슈, 대안 문화에 대한 직관적인 시각 장치를 선보인다. 작가들의 ‘깃발’은 개별적으로, 혹은 여럿이 함께 다층적인 문제의식을 호출하는 구호로 기능할 것이다. 깃발은 실재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나 -그게 어떤 지대의 어느 방향이든지- 바람을 불러올 수 있는 동력을 가지고 있다. 전시의 목표는 각자의 자리에서 그들의 언어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목소리를 내는 개인들의 작업을 모아 현재 우리의 결핍과 희망을 동시에 확인하도록 하는 것이다.
1) [송현숙의 멀리 보기]“너희도 커봐라, 그런다고 나라 안 바뀐다…어른들 그런 말 안 했으면” 경향신문, 송현숙, 2018.11.0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1021705005&code=940100&sat_menu=A074
2)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와 그 측근의 국정농단에 대한 진실규명을 요구하며 대통령 퇴진을 요구한 촛불집회로2016년10월29일부터 이듬해3월까지 지속되었다. 2016년12월에 대통령 탄핵소추가 가결되었으며 대통령은2017년3월 헌법재판소가 만장일치로 탄핵소추안을 인용하며 파면되었다. 집회 참여 누적 인원은1500만명이 넘는다.
3) 1960년대에 태어나 1880년대 청년기를 보내며 학생운동과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세대를 일컫는 말
김이박: 주로 식물성과 식물에 대한 작업을 한다. 식물을 가꾸는 화훼인이면서 원예에 대한 교육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한다. 식물을 보살피고 되살리는 활동들을 전시장에 가져와 자연적인 것에서 안정을 찾는 사람들의 정서를 조명하고 실내에 사는 식물의 생태를 관찰하도록 이끈다. 식물이 사회인들의 대소사에 위로와 감사의 제스처로 사용되는 맥락을 다뤄 장식적으로 소비되는 식물에 대한 환기 역시 주문해왔다. 2018년 여름에 서울에서 가진 개인전 《미모사: sensitive plant》 에서는 인터넷에서 수집한 짧은 영상들- 스트레스와 화를 이기지 못해 폭발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편집해 외부의 자극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민감한 식물인 미모사와 무초를 병치해 전시했다.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조건없이 베푸는 식물의 이미지를 철회하고 거친 것에 거칠게 응수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노순택: 권력과 자본에 의해 삶의 가장자리에 선 개인과 공동체의 지척에서 사진을 찍는다. 한국에서 군사독재가 명멸하다 끝날 무렵에 대학을 다니며 공포정치로 수명을 연장하려는 수많은 정국들을 목격했다. 이 시기부터 쌓인 정치사회적인 문제의식을 글과 사진으로 발언해왔고 한때 저널리즘에 종사하기도 했다. 현재는 기록자와 사회운동가를 자처하며 시위, 집회의 현장에서 아슬아슬한 긴장과 절박한 순간과 권력이 남긴 부조리한 현장의 잔흔을 기록한다. 카메라가 반드시 필요한 장소에 서서 사진이라는 매체가 효과적으로 폭로할 수 있는 사회문제를 ‘어떻게 진술’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이벤트의 촉발은 다르지만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분리된 현장에서 찍은 사진들을 연결해 해당 문제를 집중적으로 고찰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박건웅: 회화를 전공하며 작가의 꿈을 키웠으나 1990년대 사회정치적 참여를 시작하며 시위 현장에서 사용할 현수막과 대자보, 걸개그림을 대신 그리게 되었다. 이즈음 만화를 통한 스토리텔링에 대한 가능성과 열망을 느꼈다. 입대 후 군대에서 콘티와 시나리오를 다듬고 제대 후 꼬박 3년을 그린 『꽃』으로 대한민국 출판만화대상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만화를 통해 전달하며 인권에 대한 신념과 강한 진보적 성향을 작품에 반영하고 있다. 한국전쟁 중 노근리 쌍굴다리에서 벌어진 미군의 민간인 학살을 다룬 『노근리 이야기』, 1980년대 군부독재 정부 아래 고문을 당한 한 고 김근태의 증언을 다룬 『짐승의 시간』, 1979년 4월 9일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지정된 인혁당 사건 사형수의 처형 이야기를 그들 가족의 진언으로 복원한 『그해 봄』을 그렸다.
박그림: 퀴어 콘텐츠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불화 전공 작가다. 한국에서는 드물게 커밍아웃을 하며 작업을 시작했다. 도제식으로 불화를 배운 후 전공 역시 불교미술을 선택하며 전통적인 것, 한국적인 것에 대한 탐구를 해 왔으나 자신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의 한계와 보수성을 절감하기도 했다. 이어 자신의 성 정체성과 자아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공동체를 찾아 퀴어 커뮤니티를 관찰하기 시작했고 사회 관계망이나 데이트 앱에서 활동하는 아름다운 퀴어들의 모습을 왕의 어진을 그릴 때 쓰는 초상기법을 사용해 비단에 올리는 작업을 시작한다. 이 <화랑도> 시리즈 작업은 작가에게 본인의 것이 아닌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소유해보는 과정이었다. 작가는 현재 불교나 도교에서 말하는 심우도 (황소와 동행하며 자신의 본성에 대한 탐구를 위해 여행을 떠나는 동자의 여정을 담은 일련의 서사도)를 ‘심호도’(호랑이)로 바꿔 그리는 신작 시리즈를 진행하며 자신을 성찰해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8년 앱솔루트 아티스트 어워즈 상을 받았다.
안데스: 안데스는 공산품과 의류 사업이 생산해 낸 ‘카피’와 오리지널리티, 굿 디자인 사이에서 놀이한다. 오래된 옷들과 사물들을 수집하여 매일 옷을 바꿔 입는 <데일리 코디>, 그 옷들을 입고 주변을 몇 번 돌아보는 <데일리 스핀>, 오래되어 쓰임이 다 된 사물들에 연연해하는 <무용지물>과 같은 장기 아카이브/퍼포먼스 프로젝트로 그들의 수명을 연장하고 구제했다. 이는 사물의 과거, 즉 그것들의 유통과 출처를 부각시키는 동시에 이들이 잠시나마 풍미한 시간과 시대를 하루 단위로 살아 본 일상적 실천이었다. 작가는 최근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 집회의 산실인 광화문 일대의 풍경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집회들을 돌며 작업한 영상을 제작했다. 2018년 11월의 토요일, 작가는 다양한 세대와 집단의 이해관계가 얽혀 포화하는 광장의 깃발들과 그들의 성취되지 않은 희망을 엿보며 그 안에 들어갔다가 ‘돌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