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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tesy of the artist and THEO.

​기획: 이규식

THEO는 2023년 3월 3일부터 3월 31일까지 박그림, 태킴 2인전 『피니치오니: 끝에게』를 개최합니다.

피니치오니: 끝에게

끝은 어떤 모양일까요? 끝은 완전한 종말일까요? 그것이 끝이 아니라면, 그다음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피니치오니[1]: 끝에게』는 박그림, 태킴 두 작가가 겪은 새로운 이별의 형태와 경험에서 출발합니다. ‘새로운 형태의 이별’이란 온라인 환경과 기술의 발달로 말미암은 초연결시대에서의 관계 맺기와 그 이후에 맞이하게 될 이별을 뜻합니다. 이와 같이 유례없는 상황을 맞이할 때에도 우리는 종종 우리의 빈곤한 상상력으로 인해 과거의 경험에 빗대어 반응하곤 합니다. 그러나 경험하지 못한 현상에 대해 과거의 관습을 적용하는 일이 언제나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로 새로운 이별을 마주해야 할까요?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재편된 새로운 관계망은 한 번의 클릭으로 손쉽게 연결되기도, 단절되기도 합니다. 박그림은 소셜 미디어 속 관계의 양상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주목합니다. 유저에게 무한한 자유를 약속하고 언제 어디서든 양방향 소통이 가능해 보이는 온라인 환경과 소셜 미디어는 때때로 개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언팔로우, 차단과 같이 영문도 모르는 채 일방적으로 관계의 종말을 통보받거나, 온라인상의 기록이 사라져 현실에서 존재했던 사건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덧씌워지는 경험처럼 말입니다. 소셜 미디어의 이면에 자리한 냉혹함과 폭력성, 그리고 데이터가 소실되어 취약해진 기억과 해소되지 않고 부유하는 감정의 잔여물은 어떤 태도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박그림은 본질을 흐리게 하는 (소셜 미디어의) 피상적인 형상을 걷어내고 이미 지나간 사건들을 다른 시간대에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를 시도합니다. 관계의 순간을 포착하여 붙잡아두려 하지 않고, 변칙적이고 변화하는 관계의 속성을 인정하고 기꺼이 부딪혀 충돌시킵니다. 그리고 빛과 어둠, 흑과 백, 옳고 그름과 같은 이분법적인 시선을 거두고 그 경계에 있는 무수히 많은 회색 지점을 포착합니다. 지금은 그때와 같지 않아서, 데이터가 남지 않았다고 해서 있었던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듯 화면 속에 생채기처럼 남은 스크래치는 나와 너, 우리가 겪은 사건들을 소환하고, 앞뒤로 겹겹이 칠해진 검은 화면은 켜켜이 쌓인 시간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이버 장례식에 참가하여 사용자의 신체와 온라인의 자아가 단절되는 순간을 경험한 태킴은 온라인 게임의 플레이어와 아바타의 관계, 그리고 그들의 예정된 이별에 주목합니다. 온라인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자아를 투영하는 아바타는 플레이어가 접속해있는 동안 일시적으로 생명력을 획득합니다. 커스터마이징과 스킨을 통해 아바타는 플레이어의 개성과 취향을 획득하고, 비대면 온라인 환경에서 공동체 형성을 위한 매개체로 기능합니다. 하지만 아바타에게 있어 플레이어와의 영원한 이별은 불가피합니다. 아바타에 링크되는 인간의 죽음 또한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활성화되지 않을, 데이터만 남은 아바타에게 플레이어의 죽음은 곧 영원한 죽음일까요, 혹은 완전한 해방일까요?

데이터의 생성, 변화, 멈춤, 소멸이라는 아바타의 생애주기는 자연의 섭리와도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종국에 마주하게 될 끝을 있는 힘껏 외면하며 살아가는 인간과 달리 태킴의 화면 속 아바타들은 다가올 미래의 이별을 예견이라도 한 듯이 근조(謹弔)와 축하 화환을 동시에 휘감습니다. ‘설레는 근조’ 시리즈는 아바타의 시선에서 설레는 태도로 신체와의 이별을 기다리는 모습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별을 전제로 이들의 관계에 주목할 때, 아바타는 역설적으로 불완전한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체제가 아닌 신체의 확장, 나아가 현대인의 초상이 됩니다.

전시는 박그림, 태킴의 고민과 작품을 통해 우리가 끝을 바라보는 시각을 돌아보자고 제안합니다. 마침표를 찍을 때 비로소 새로운 문장이 시작될 수 있듯이, 끝을 선언할 때 새로운 시작이 있으니까요. 끝을 향해 살아가는 우리들을 위해, 과거와 이별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준 끝에게 찬사를 보내며.

이규식(독립 큐레이터)

 

[1] 피니치오니는 라틴어 피니치오(finítĭo)의 여격으로 ‘끝에게’라는 뜻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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